지난 일요일에는 이문세 님의 콘서트를 다녀왔습니다.
하루의 시작부터 날씨가 끄물끄물하더니, 결국 콘서트 시작에 앞서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공연은 올림픽공원 잔디마당에서 하는 야외공연이라 20mm 넘게 비가 내리면 공연이 취소되거나 변경된다는 안내사항이 있긴 했지만, 취소가 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안내사항이 무색하게 공연장으로 가고 있는 와중에도 본 공연에 앞서 시작된 축하 공연의 왕왕 울려 퍼지는 소리에, 이렇게 우천 콘서트로 진행되는구나 싶었어요.
비는 내리고, 가방과 신발은 벌써 빗물로 흥건하고, 소리와 상황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티켓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공연장 안으로 입장.
6시 반 공연은 비 때문에 조금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상황은 이렇게 되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축복의 비로 생각하자, 열정을 다해 후회 없이 신나게 즐기자고 마음은 먹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고 공연장에서 준비해 준 우비를 입었음에도 흠뻑 젖은 우리의 모습이 조금 웃겼고 얼떨떨했어요.
그래도 가을밤에 내리는 비는 많이 춥지 않아 제법 견딜만했습니다.
하얀 우비를 입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니, 한마음 한뜻으로 모인 사람들 같고, 팬클럽 사람들이 우비를 맞춰 입고 모인 것 같아 콘서트장은 참 그럴듯한 분위기였습니다.
이문세 님의 공연은 한 10년 만에 온 것 같아요.
처음 간 그때는 추운 겨울이었고, 실내였고, 가장 저렴한 좌석 먼발치에서 보며 다음번에는 꼭 저 앞자리에서 보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10년 정도가 지나 이제서야 공연을 다시 오게 되었고.
다행히도 우리는 그때보다는 앞자리에서 공연을 보게 되었지만, 정말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어요.
좌석뿐 아니라 공간도 날씨도 계절도.
우리의 모습도 그리고 그의 모습도.
변치 않는 모습이란 없지만, 십여 년 전 내가 본 그때의 얼굴과는 다른, 조금 수척해진 모습에 마음이 조금 슬퍼지고 무거워졌지만, 우리의 문세 님이 폭죽과 함께 짠하고 무대 위에 나타났을 때.
저는 정말 정말 기뻤어요.
지금까지 노래를 들려주고 계셔서, 이렇게 무대 위에 있어 주어서요.
우아아아아아-!
누가 시키지 않아도 힘찬 함성이 절로 터져 나왔죠.
비가 많이 내리는 공연 초반에는 괜찮을까, 관객석의 사람들과 무대 위의 사람들, 무대 안팎의 사람들이 걱정되었지만 제 걱정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고, 걱정이 공연에 도움을 줄리 만무했습니다.
비는 서서히 잦아들었고, 전광판의 픽셀이 하나 둘 나가긴 했지만 저의 입장에서는 차질 없이 공연이 진행되는 듯 보였어요.
이제는 정말 걱정을 내려놓고 즐길 수밖에.
노래를 잘 부르진 못해도 노래방 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아니 노래방을 언제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소리 내며 몸 흔들며 신나게 즐긴 기억이 언제인지.
그 아쉬운 마음 담아 비 내리는 와중에 깊어가는 가을밤, 커다란 무대를 보며 즐길 준비를 단단히 한 관객석 안에서의 저는 거의 모든 곡을 사람들과 함께 떼창 했고요.
히트곡이 아주 많고, 그 히트곡을 대부분 알고 있는 공연장에서 노랫말을 따라 부르는 것이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아주 좋았던 것은 마음껏 소리칠 수 있다는 것.
목청껏 소리를 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힘찬 소리가 흥을 돋운다는 것.
펄쩍펄쩍 뛰며 잊고 있던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
후후.
아주 오랜만에 기쁘게 소리를 내질러서 참 시원했어요.
역시나 저의 목 상태도 그때처럼 건강하고 맑진 않았지만, 기분만큼은, 정말 기분만큼은 변함없이 좋았습니다.
잔디마당 위에 하얀 우비.
옷도 몸도 그리고 마음까지 흠뻑 젖어버린 그날.
누군가의 노래에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한 가수의 존재에 깊은 감사함이 들었던 그날.
속상한 일들이 있는 와중에 기쁨의 날이 되어준 그날.
십여 년 전의 첫 겨울 콘서트를 지나, 비 내리는 가을밤에 보낸 두 번째 콘서트도 제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이 확실합니다.
이런 기억들이 올해의 가을을 더 풍성하게 해줄 것임을 믿어요.
그렇게 피식피식 웃으며 추억할 날을 앞으로도 많이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