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면 입동입니다.
벌써 가을 끝에 와 있는 것인데요.
이 가을의 손을 잡고 놓지 않고 싶어요.
가을을 붙잡는 작은 방법이 하나 있다면, 길가에 떨어진 고운 단풍잎을 줍는 것입니다.
저는 올해에도 예쁜 단풍잎 몇 개를 주워 책 사이에 끼워 두었습니다.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옅은 색에서 진한 색까지, 이렇게 다양한 색을 보여주는 계절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나무와 풀은 그렇게 매일매일 색을 달리하며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참 기특하고 매번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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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다 보면 강아지의 귀여운 엉덩이에 늘 시선이 머뭅니다.
그 귀여운 뒷모습을 바라보며, 요즘 자꾸자꾸 떠오르는 것은 '개처럼 살자'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지금 보니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 2013년.
살아가면서 생각해 봐야 하는 여덟 가지 키워드가 담긴 박웅현 저자님의 '여덟 단어'라는 책입니다.
그 여덟 개의 단어는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하고 싶은 문장은 <5강, 현재> '개처럼 살자'라는 부제가 있는 곳에 실려 있습니다.
그때 마지막 질문이 "박 CD님은 계획이 뭡니까?"였습니다.
저는 "없습니다. 개처럼 삽니다."라고 대답했어요.
부연 설명을 부탁해서 "개는 밥을 먹으면서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자면서 내일의
꼬리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죠.
(…)
제가 집에 돌아오면 그 개는 반갑다고 5분 동안은 제 얼굴을 핥고 나서야 짖기를 멈췄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때 보면 핥는 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요. 그리고 밥을 주면, 이 세상에서 밥을 처음 먹어보는 것처럼 먹죠. 잠잘 때도 보면, '아, 아까 주인이 왔을 때 꼬리 쳤던 게 좀 아쉬운데 어쩌지?'
그런 고민은 추호도 없어요. 그냥 잡니다. 공놀이할 때는 그 공이 우주예요. 하나하나를 온전하게 즐기면서 집중하죠.
(…)
개들은 잘 때 죽은 듯 잡니다. 눈을 뜨면 해가 떠 있는 사실에 놀라요.
밥을 먹을 때에는 '세상에나! 나에게 밥이 있다니!'하고 먹습니다. 산책을 나가면 온 세상을 가진 듯 뛰어다녀요.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자요. 그리고 다시 눈을 뜨죠.
'우와, 해가 떠 있어!'
다시 놀라는 겁니다. 그 원형의 시간 속에서 행복을 보는 겁니다. 순간에 집중하면서 사는 개. 개처럼 살자. 'Seize the Moment, Carpe diem(순간을 잡아라, 현재를 즐겨라')의 박웅현 식 표현이자, 제 삶의 목표입니다.
-박웅현, <여덟 단어>, 북하우스, 132, 134p
2013년에 나온 이 책이 2022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지, 순간을 잡아라, 현재를 즐겨라라는 텍스트 자체도 지금 쓰기엔 너무나 진부한 표현은 아닌지, 우리는 개가 아니고 사람이라 개처럼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개의 마음도 잘 모르면서 이렇게 얘기할 수 있나 싶지만요.
그래도 하나는 확실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감히 개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
반복되는 하루하루 같지만,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는 매일매일.
그 지루하고도 감사한 원형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안에서 저는 여전히 아침 기상을 힘들어하며, 밥을 먹을 때 다른 생각을 하고, 내가 한 일을 후회하고 자책하며,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을 걱정하며 잠 못 드는 날이 많습니다.
이렇듯 저는 훌륭한 개처럼 살지 못하지만, 밥을 먹을 때만큼은, 공기와 날씨를 느낄 때만큼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만큼은, 온전히 현재에 집중하자, 순간을 살자는 마음을 다시 한번 먹게 됩니다.
그리하여 된장찌개의 구수함과 밥알이 톡톡 씹히는 식감을 느끼며, 지금의 이 선선한 바람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과 색을 눈에 담고,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마음과 눈동자와 목소리에 집중하며, 그렇게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하려고 합니다.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것은, 2022년 지금에도 여전히 중요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유효합니다.
저는 그런 순간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