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몸이 많이 무거웠어요.
우체국에 가야 하는데, 우체국으로 가는 그 10분 거리의 걸음도 힘든 날이 있었어요.
집 앞에는 편의점이 있거든요.
편의점에서도 택배를 보낼 수가 있잖아요.
우체국을 갈까, 편의점을 갈까. 우체국? 편의점? 우체국편의점우체국편의점...
한 열한 번쯤 고민하다가 결국 우체국에 가는 것을 택했어요.
편의점 택배도 아주 잘 가지만, 우체국 택배에 믿음이 가는 건 사실이에요.
공들여 만든 제 책이 길을 잃거나 혹은 훼손되면 어쩌지 하는 소심한 걱정이 더 신뢰하는 쪽을 택하게 했어요.
추리닝 바지에 양말을 챙겨 신고, 캡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외투를 걸친 후, 택배 상자를 가방에 넣고 밖으로 나갑니다.
추운 계절이 되니, 일이 있거나 나가고 싶은 약속이 아니면 자꾸자꾸 집에만 있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그 무거움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오면, 정말 신기하게도 좋을 때가 훨씬 많아요.
우체국 가는 길 중 80프로 정도는 숲길입니다.
나무가 많이 보여 좋지만 이곳은 '숲'보다는 '길'에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걸음은 여유와 분주함 그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저는 귀에 에어팟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걸을 때가 많지만, 때에 따라 맨 귀(?)를 열고 그냥 걷기도 합니다.
대낮에 걷고 있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대화를 엿들으며 제 걸음의 속도에서 사람들을 봅니다.
걸음이 느린 사람, 사람들 사이를 휙 휙 지나가며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 편한 복장으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 비슷한 차림을 하고 데이트를 나온 듯한 사람 둘, 목에 회사 명함을 걸고 한 손엔 커피를 들고 잠깐의 틈에 산책을 나온 듯한 사람들, 언뜻 들어도 잘 모르겠는 외국의 언어로 대화하는 사람들, 먹을 것을 가운데에 놓고 친구와 나란히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지나칩니다.
그렇게 산책 아닌 산책을 하다가, 사람들은 무엇을 궁금해할까가 궁금해졌어요.
사실 집에서는 멍하니 있다가 산책을 나오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밖에 나오니까, 사람들을 보니까, 저기 저 사람들은 어떤 것을 궁금해할까? 그런 물음표가 생겨요.
참 신기한 일이죠.
밖에 나가서 생각이라는 것을 해볼까, 답답해서 환기를 좀 해볼까 하며 나온 것도 아니었는데.
간신히 힘을 내어 나온 천천한 발걸음에 집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물음표가 퐁 하고 생기는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대고 물어볼 수는 없으니 질문과 대답은 그저 나 혼자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지금 무엇을 궁금해할까.
반대로 누가 내게 어떤 것을 가르쳐주면 좋을까 하고요.
그런 뭉게구름 같은 질문들이 저를 스쳐갔고, 그러면서 저는 벌써 우체국에 도착했기 때문에 그 질문들은 휙 날아가 버렸고 풀려버린 몸과 마음을 바로잡고,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명확히 적은 뒤 택배를 발송했습니다.
돌아오는 발걸음에는 단순하게 다시 딴 생각을 하지요.
이번엔 사람들이 아니라 자연을 보면서.
오늘 날씨에 대해, 떨어진 나뭇잎과 나뭇가지만 남은 나무를 보면서, 아까 그 질문들은 금세 잊고 그저 이 가을을 아쉬워하면서 집으로 향합니다.
다시 이렇게 글을 쓰며 떠올려 봅니다.
내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에 대해.
그런 것은 가끔 도서관에서 발견되기도 하지요.
도서관 속 수많은 책들 사이를 걷다가 골라온 책을 보면, 내가 이것을 궁금해했나를 알게 되기도 해요.
얼마 전에는 마스다 미리의 <생각하고 싶어서 떠난 핀란드 여행>을 빌려 보았습니다.
핀란드라니요? 가까운 일본도 아직은 겁이 나서 가지 못하고 있는데 저 먼 나라 핀란드라니요.
이 책 시작하는 글에는 이런 문장이 나와요.
여행을 떠난 김에 생각하는지,
생각하고 싶어서 여행을 떠나는지.
핀란드 나 홀로 여행.
어슬렁거리는 곳은 주로 수도 헬싱키.
트램을 타면 어지간한 관광 명소는 갈 수 있고
차내가 붐비는 일도 없다.
(…)
따뜻한 커피와 시나몬 롤을 먹으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시간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나 자신을.
-마스다 미리(홍은주 옮김), <생각하고 싶어서 떠난 핀란드 여행>, 이봄, 2-3p.
마스다 미리 작가의 생각 회로가 제 산책 회로와 비슷하다는 것을 보니 반가웠어요.
여행 - 생각, 산책 - 생각.
여행과 생각 중 무엇이 먼저인지, 산책과 생각 중 무엇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여행과 산책은 대체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
그 둘은 의도치 않아도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
아무튼 그렇게 하여 제가 요즘 궁금해진 것이 있다면, 핀란드에요.
그 나라의 백야도 궁금하고요, 거리 곳곳을 누비는 트램도 궁금하고요, 핀란드 국민 건축가 알바 알토의 하우스도 궁금하고요, 그가 만든 가구도 무척이나 보고 싶습니다. 마스다 미리가 책 속에서 자주 언급한 아카테미넨 서점도 가보고 싶어집니다.
이 책은 여행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내 휴대폰에도 있을 법한 작정하지 않은 편안한 사진들만이 앞에 몇 장 있을 뿐인데, 그걸로도 아주 충분했습니다.
헐렁한 듯 보여 편안하고 친근하지만 알고 보면 단단하고, 자기만의 인생을 멋지게 개척해 나가는, 가끔 만나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네 언니의 여행기 같아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다시 찾아보고 있는 영화는 핀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카모메 식당'이에요.
가고 싶은 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이렇게 촘촘히 볼거리가 많군요.
건물들도, 사람들도, 옷차림도, 날씨도, 가구도, 창문도, 시장도, 거리도, 숲도, 나무도, 강도, 그 위에 떠 있는 배까지 쉬이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내용은 다 알고 있어도, 틈날 때 천천히 쪼개어 보는 영화여도 제 눈에는 볼거리가 참 많아서 정보를 들려주는 유튜브보다 더 재밌습니다.
저는 언젠가 궁금했던 그 나라, 저 먼 나라 핀란드에 가게 되는 날이 올까요.
미래의 저는 어디 있을지 잘 그려지지 않고, 이 궁금함 또한 뭉게구름처럼 어느샌가 사라진다 해도.
먼 나라를 꿈꾸면서 집구석을 떠나지 않는 지금의 모양새가 조금은 시시해도.
그저 저는 여기서 이렇게 마음속에서나마 남 몰래 먼 나라를 품으며 꿈꿔보는 일이, 핀란드에 대한 키워드를 검색해 보는 일이 요즘 제게는 꽤나 즐거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