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겐 그림이 높은 뜀틀 같습니다.
그림을 보는 것이야 제게도 물론 기쁨이고 안정이고 그래서 고맙게도 위안을 얻을 때가 많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저걸 반드시 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저 멀리서부터 다다다다 달려가 발돋움을 하고, 깊은 단전으로부터 읏차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도록 뛰어야 하는.
그러니 작업방으로 들어갈 때 힘차게 내달려야 할 것만 같고 문지방을 넘는 그 반의반 걸음이 어려웠습니다.
들어가기도 전에 머뭇거리고 엉덩이와 발은 무거워지고.
내일 또 내일, 그렇게 자꾸자꾸 내일로 미룹니다.
내가 나를 어르고 달래야 하는 완전 수동의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어느 날은 실제로 무서워서 못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날이 어두워져 방 안의 모든 사물들이 검은색으로 보일 때 살짝 열린 문 틈새로 뭔가 나올 것 같은 으슥한 기운이 들어 스르륵 방문을 닫아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 공간엔 책상과 의자가, 컴퓨터와 프린터가, 좋아하는 책들이, 그리고 온갖 도구와 종이들이 있습니다.
무서울 것이 전혀 없지요.
붙여진 작업방이라는 이름대로 이곳에서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저의 강박이 우습게도 실체 없는 두려움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럴 땐 외곽의 전망 좋은 카페나, 호수나 나무가 보이는 낯선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기분이 몹시 드는데 그것은 회피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도피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운동이라서 이것을 잘 하려면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 작업방은 운동장이자 실내 헬스장이 됩니다.
그 안에 제가 연마해야 할 도구들이 여러 개 놓여 있습니다.
목탄, 색연필, 수채화, 아크릴, 과슈, 유화 등등의 것들.
오로지 제가 만지고 움직여줘야 하는 것들이 이곳에 있습니다.
연습을 게을리하면 당연히 늘지 않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저도 굳고 물감들도 굳어 버립니다.
하지만 이곳은 누군가의 설득과 강요도 없고, 돈을 내지 않았으니 매일 나가지 않아도 아까운 기분은 들지 않아요.
시키는 이 없는, 완전한 자율성의 공간이기에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입니다.
슬렁슬렁 스트레칭만 하고 나와도 되지만, 여기에선 어떤 결과를 내야 할 것만 같죠.
중요한 건 나 홀로 1인 2역을 모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곳의 관장이자 단 한 명의 회원이며, 선생이자 학생입니다.
끌어주고 당겨주고 끌리고 당기는 반대의 역할을 모두 해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숨을 고를 여유와 정신력, 그리고 뛸 수 있는 체력이 필요했습니다.
모두 다 핑계인 듯하지만, 왜 이렇게 그림이 안 그려질까, 왜 자꾸 피하게 될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그림이 내겐, 뜀틀이었구나.
이걸 욕심쟁이처럼 준비 운동도 없이, 연습도 없이 한 번에 잘도 넘고 싶었구나.
저는 요즘 다시 그림을 그립니다.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고, 컵에 물을 받고, 연필을 들어 밑그림을 그리고 물감을 팔레트에 짜고 붓을 쥐어 색칠합니다.
그런 제가 기특하고 반가워 그림 한 장 그려놓고도 큰 걸 해낸 것 같은 성취감에 사로잡힙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5분도 채 가지 않고, 금세 망쳤고 구리다는 결론이 나지만 그래도 그래도 완성했다는 것에 큰 점수를 줘버립니다.
문지방을 넘어 여기까지 왔으니 이 관장은 유일한 이 학생에게 흐뭇한 미소를 보냅니다.
운동을 잘하려면 당연히 꾸준해야겠고, 여기에서 내게 맞는 재료와 도구를 찾아 헤매야겠죠.
연습 또 연습의 결과.
반복 또 반복에 만들어지는 근육.
늘 다 아는 사실에, 꾸준하지 못한 내 한심함과 잘되지 않는 좌절감에 빠져 어느 날은 힘들어서 울 때도 있겠지만, 또 무서워서 스리슬쩍 방문을 닫는 날도 오겠지만.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 것이라 믿으며 다시 돌아와 주는 새해에, 폴짝 뛰어오르는 저의 모습을 그립니다.
"나는 내가 반복한 것이다."
-김목인, <영감의 말들>, 유유, 20p
(위의 페이지에 인용된 책은 장-다비드 나지오, <무의식은 반복이다>(김주열 옮김, 눈, 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