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졸린 눈을 하고는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보다가 시와님의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길상사에서라는 곡.
저는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아침 침대에서 듣는 이 음악은 참 편안했습니다.
걱정으로 가득 찬 마음이 잠시 따뜻해지며 스르르 풀리는 것 같았어요.
멜로디와 목소리가 잔잔하게 흘러가는 노래.
혼자 있는 방 안에서 들으니 정말 좋더군요.
어떤 노래일까 궁금해서 찾아본 음악에 뜻밖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졌어요.
길상사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하고요.
지도 앱을 켜보니 서울 성북동에 있더라고요.
간절한 무언가를 빌고 싶은 곳이 필요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어요.
그렇게 저는 지난 주말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에 다녀왔습니다.
방문 전 미리 찾아보며 알게 된 것은 이곳 길상사는, 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계셨던 것으로 유명한 절이라는 간단한 사전 지식만 품고 방문했습니다.
저는 종종 절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절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품어주는 것 같아요.
절은 대부분 고요하고 한적합니다.
절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은 하늘과 산, 나무와 풀, 돌과 흙입니다. 덕분에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연의 소리를 느끼고 들을 수 있어 번잡한 곳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기분이 듭니다.
소란스러운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눈치 볼 것 없이 천천한 걸음으로 호젓한 시간을 보내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어요.
(가끔 궁에 가는 것도 이런 비슷한 이유로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딘가의 절을 정해놓고 주기적으로 다니는 사람이 아니어서 처음 가보는 절이 늘 낯설지만 사실 그래서 좋기도 합니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홀가분해요.
마음이 힘들 때엔 밝은 에너지를 내며 일부러 짓는 웃음이 힘들기도 하니까요.
길상사의 입구에 들어서자 소원을 적는 곳이 있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소원지와 펜, 소원지를 넣는 함이 있었는데 평소라면 지나쳤을 텐데 이날은 왜인지 그것을 지나치고 싶지 않아 소원을 적어보기로 했어요.
소원은 다른 게 아니라 가족들의 건강과 평안이었지요.
절에서 비는 소원이란, 늘 이런 것입니다.
건강과 행복 같은 것.
이런 단어 앞에서는 마음이 모아지고 겸손해집니다.
가족 종 누군가 힘들어하며 아파할 때 그러니까 내 가족의 건강과 평안이 흔들리는 것 같을 때 이런 곳을 찾으면 더욱더 제 마음은 간절해집니다.
무리한 부탁이라 할지라도 꼭 들어주십사 하는 마음을 담아, 종이 위에 한자 한자 정성을 들이고 글자에 진심을 담아 소원으로 가득한 소원지함에 제 소원도 넣었습니다.
나의 유약함을 그대로 펼쳐 보일 수 있는 곳, 간절한 마음이 모인 곳에서 받는 분명한 위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몇 걸음을 옮기자, 후기 사진에서 보고는 꼭 보고 싶었던 불상이 보였습니다.
이 불상은 제가 늘 봐왔던 불상의 모습이 아닌 길쭉하고 간결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언뜻 성모마리아도 떠오르는데요, 고단함과 슬픔이 있는 표정이었어요.
어떤 마음으로 왔든 그게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노라는.
저는 불상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눈을 감고 또다시 조용히 기도를 올립니다.
이럴 때 신성한 장소는 힘을 발휘합니다.
내 마음이 지금 어디를 향해 있는지, 내 마음속 간절함과 솔직함이 자연스레 발현됩니다.
저는 이렇게 길상사에 와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금방 나오기에는 아쉬워 천천히 절 구경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길이 닦인 약간의 오르막길을 오르니 스님들의 수행 공간과 작은 개울이 보였고, 가장 안쪽 높은 곳에는 법정 스님이 계셨던 소박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많이 들어온 익숙한 분의 지나온 자리를 직접 마주하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길을 내려왔습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지붕 위에는 낮잠을 자는 듯 옅은 갈색빛의 고양이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리며 앉아 있었어요.
한참을 쳐다봐도 그 자세 그대로.
절에 와서 이렇게 귀여운 풍경까지 덤으로 보게 되다니.
서두를 것 없는, 한적한 이곳을 천천히 빠져나온 뒤에야 저는 살짝 개운하고 가벼워진 듯했습니다.
노래가 데려다준 이곳.
저는 앞으로 길상사를 지나갈 때마다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간 저의 빚과 고마움의 이 하루를 떠올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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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님이 노래한 길상사는 어디를 말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 집에 와 다시 찾아보니, 길상사는 전국 여기저기에 같은 이름을 한 절이 많았습니다. 찾다 찾다 결론을 내린 건 정확한 위치란 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더군요.
그렇게 조금 쓸데없는 것을 찾고 있을 바에야 길상사에서의 가사를 한 번 더 읽어보기로 했어요.
이렇게 앉아있는 이 오후에도
나무 사이로 보인 하늘
아름다운 것들을
가만히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무언가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 가지들
흘러가는 저 물소리도
어쩌나 두고 떠나기는 아쉬워
한걸음
입 맞추고
돌아서네요
여운이 깁니다.
입 맞추고 돌아서는 아쉬운 발걸음이 무엇인지 잘 알아서 눈에 훤히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나의 몸도 마음도 어딘가로 데려다준 노래.
아름다운 것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무언가.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 노래 덕분에 저는 위로를 받은 것이, 슬픔이 잠깐 옅어진 것이 틀림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