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흰머리가 보이면 친구가 그걸 발견하고 검은 머리 사이에서 홀로 튀고 있는 흰머리 몇 가닥을 쏙쏙 뽑아주었습니다.
이십 대 초반에 나오는 흰머리는 으악하며 놀랄 일이었고 제거해야 할, 벼 속에 피 같은 미운 존재였습니다.
그렇게 제게 흰머리란 간혹 스트레스가 쌓일 때 보이는 것이었고 별스럽지 않게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학교 졸업 후 편집디자인 일을 하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할 때 제 앞머리 쪽에 듬성듬성 흰머리의 영역이 크게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제 옆에는, 놀람과 으이그의 표정을 지으며 제 머리카락을 헤아리며 흰머리를 쏙쏙 제거해 줄 다정한 친구는 없었고.
퇴근 후 저는 긴 거울 앞에 앉아 눈을 치켜뜬 채 흰머리를 홀로 뽑아야 했습니다.
거울 밖에 나와 거울 속에 내 모습은 모두 다 멋이 없고 볼품없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족집게를 들고 흰머리 뽑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다간 제 모든 앞머리가 사라질 것 같았거든요.
흰머리를 보이는 것이 어찌나 창피하던지, 누가 제 머리를 힐끗 쳐다보는 것만 같아도 '내 흰머리를 보고 놀랐나, 어쩌다 저렇게 일찍 흰머리가 났을까' 그런 생각을 할 것이라며 제멋대로 상상하고 의심했습니다.
사람은 남에게 의외로 관심이 없는데, 홀로 흰머리에 뾰족한 마음이 들어 머리에 아주 예민해졌습니다.
머리가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데, 나는 왜 나는 왜.
한 톤으로 통일된 빼곡하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친구들, 연예인들의 아름다운 머리 스타일을 보며 괜히 더 부러워했습니다.
나와 흰머리는 아주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기가 내겐 너무 빨리 찾아왔다고 느껴졌고 그렇게 내게 찾아온 흰머리를 미워하고 미워하고 또 미워했습니다.
흰머리가 나올라 치면 잽싸게 그것을 가려야 했고, 한 달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염색을 했습니다.
저는 유난히 앞머리 쪽에만 흰머리가 났습니다. 정수리 쪽의 머리를 들어 올리면 나도 보며 놀랄 정도로 집중적으로 그곳에만 흰머리가 많았습니다.
흰머리 웅덩이, 흰머리 연못.
아무에게도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없는 비밀. 숨기고 싶은 부분.
좋아하던 앞머리는 당연히도 내릴 수 없게 되었고. 의도치 않게 8:2의 가르마를 타고 다녔으며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다 하다 덜 티가 나게 아예 밝은 노란색으로 염색을 했습니다.
원하지 않았던, 그렇게 밝은색으로 염색을 하고 온 날.
기쁘지 않았습니다.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밝은 머리색에 어떻게든 내 흰머리를 가려보겠다는 보잘것없는 의지.
멋 내고 싶어서, 마냥 하고 싶어서 했었다면 그렇게 우울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머리를 하고 싶을 때 아주 아무렇지 않게 아무 미용실을 다녔던 저는, 매번 새 미용실을 찾아다니며 낯선 이에게 내 안의 속상함을 숨기며 아무렇지 않은 듯 제 머리 사정(!)을 말하고 싶지 않았고, 제게는 이제 단골 미용실, 제 머리를 잘 알아주는 헤어 선생님이 필요했습니다.
괜찮다 싶은 헤어 선생님을 찾는 것은 괜찮은 치과 선생님을 찾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다녀보며 괜찮은 선생님을 만나면 저는 그대로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문제는 이사를 다닐 때. 다시 새로운 헤어 선생님을 찾아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아무튼 왜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느냐면, 그렇게 거의 10년 가까이를 정기적으로 의무적으로 해온 일. 미용실에 가는 것.
저는 미용실에 가는 것을 무척이나 무척이나 싫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야 하고 싶은 머리 스타일이 있으면 마음껏 자를 수 있었고, 파마도 할 수 있었지만.
저는 거의 비슷한 헤어스타일에 잦은 염색으로 파마를 한다거나 하는 스타일 변신은 하지도 못하니까요.
늘 거기서 거기인 스타일이 지루할 뿐입니다. 가만히 미용실 의자에 앉아있는 것도 좀 고역이고요.
가볍고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미용실에 가는 건 제게 해당되는 일이 아니며, 벼르고 벼르다, 아침 등교를 버거워하는 학생처럼 꾸역꾸역 등교하듯이 미용실에 갑니다.
어찌나 싫은 표정과 마음이 되는지, 미루고 싶다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싶지만 자라나는 흰머리는 남의 속도 모르고 속절없이 속절없이 퍼져만 갑니다.
그러한 제가 요즘, 솟아오르고 점점이 퍼지는 제 흰머리를 가만히 보다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요.
저는 이제 이 흰머리 녀석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갑자기 그런 깨달음이 왔다고 해서 와, 내 흰머리 너무 예쁘당 감탄할 수는 없지만요, 언제까지 이렇게 미워하기만 해야 할까, 미워하는 것도 좀 지치고 어떤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데 나도 이 미워하는 마음이나마 그만 좀 접어볼까, 볼 때마다 반가워해줄 수는 없어도 인정하고 솔직해지는 정도까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궁극적으로는 낯선 이가 내 머리를 보든 말든. 그러거나 말거나로 일관하는 태도를 갖고 싶긴 하지만. 그것은 좀 시간이 걸릴 듯하고요.
하지만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라는 말, 여전히도 많이 쓰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파뿌리인걸.
지금도 내 사랑은 아이엔지, 현재 진행 중인데. 이미 소싯적부터 파뿌리가 된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라는 걸 괜히 피력하고 싶네요.
백발에 붙는 것은 스트레스, 나이 듦, 고됨이라는 부정적인 공식.
그 반대편에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는 멋진 백발 청춘이 많이 보이면 나도 함께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여러분, 에리카팕 님을 아시나요, 그의 은발머리를 보며 저는 반가움과 놀라움과 멋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의 인스타 피드에 쓰인 'i like my silver hair' 문장에 느낀 후련함이란!
이렇게 멋진 백발의 청년도 참 많겠지요? 저도 이제 그만 가리고 그런 무리에 진심으로 합류하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이제, 나 흰머리 난다. 난지 꽤 됐다.라며 말할 수 있는 사람들, 흰머리에 히익! 놀라며 너 머리 왜 그래?라며 야단법석을 부리며 어떡하냐고 혀를 차는 사람들보다 흰머리 그까짓 거 보여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 제 머리보다 제 말과 제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낍니다.
며칠 전에 어김없이 미용실에 갔습니다.
늘 하던 색으로 뿌리 염색을 한 뒤 커트를 하려는데 이날따라 유난히 앞머리를 자르고 싶었습니다.
매번 자르고 싶던 앞머리.
뿌리 염색을 해도 일주일 만에 흰머리는 자라서 살짝 보이거든요.
앞머리를 내리면 흰머리가 티가 날까 싶어 몇 년을 앞머리 없이 지냈지만, 그렇게 감추고 싶은 것을, 감춰지지 않는 것을 언제까지 감출 수 있을까.
일주일 치의 행복일까? 고민하다가 앞머리를 자르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누릴 수 있는 일주일 치의 행복,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헤어 선생님이 앞머리를 쓱 하고 자를 때 저는 눈을 더 질끈 감았습니다.
설렜습니다. 웃음이 났습니다.
제 이마에 앞머리가 뿅 생겼습니다.
이게 뭐라고 여태껏 이렇게 망설였을까요?
저는 앞머리를 내리고 새사람으로 태어난 듯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삐뚤빼뚤 앞머리가 조금 웃기고 엉성하지만, 내가 자르고 싶어서 자른 앞머리가 용케도 귀엽습니다.
이 머리 뒤로 옆으로 변함없이 흰머리가 자랄 테지만, 그래그래 자라렴.
이제는 비밀을 들켜도 되지.
이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다 사랑해 주는 날도, 그런 날도 그런 날도 올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