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들로 엄마의 체력이 너무 떨어졌고 컨디션이 잘 회복되지 않아 걱정스러운 마음에 저는, 지난 1월에 엄마의 건강검진을 예약했어요.
결과가 나오기 며칠 전 연락이 왔는데, 췌장에 4cm 종괴가 발견되었다고 하는 거예요.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하는 검진센터의 소견은 사람의 심장을 얼마나 덜컥 내려앉게 하던지요.
마음이 몇 번이나 지옥을 왔다 갔다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대학병원에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저는 마흔을 바라보고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부모님의 보호자가 된 기분이 낯설고 무겁습니다.
아주 안 좋은 생각 끝까지 갔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슬플 땐 참지 않고 울었습니다.
12월부터 해가 바뀔 때까지 툭하면 우는 때가 많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눈물은 차차 잦아들어 이렇게 다시 잘 지낼 수 있으려나 했는데 엄마의 검진 결과가 참 속상하게 나와서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예전이라면 우울함에 빠져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무엇도 안 하는 쪽으로 지냈을 것입니다.
엄마가 아픈데 뭘 하냐, 엄마는 속상하고 지내고 있을 텐데 너는 어딜 가냐... 그런 생각으로 죄책감을 가지며 웃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지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내게도 엄마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엄마는 딸이 그런 마음으로 지낸다는 걸 알면 더 속상할 테고요.
그렇게 저는 저의 걱정을 내버려 두기도 하고 모른체하기도 하면서 틈틈이 좋은 걸 보러 다니고 웃음이 날 땐 웃고 아무에게도 말 못 할 것들은 일기장에 적어 가며 제 나름의 시간을 잘 보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함께 마음을 졸이고 있으면서도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웃을 수 있으려면, 엄마의 마음을 안심시키려면, 저는 약해지기보다 강해져야 했고 무른 사람보다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우리 뇌는 조금 바보 같아서 가짜 웃음도 진짜 웃음으로 알고 행복 회로를 돌린다면서요.
이게 바보 같은 건지 아닌지 뭐가 좋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때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스스로 다독이며 괜찮다고 말하면 정말 괜찮아지는 때도 있으니, 그렇게 뇌를 속이면 뇌도 내 마음을 알아채고 속아주는 것.
사실 우리의 뇌는 아주 똑똑해서 아닌 것 같은 것도 금세 알아채고 누구도 모르는 내 마음을 정확하게 읽는 것이고, 알고 보면 무던히도 꾸준히도 사람 하나를 살리려고 꽤나 애를 쓰는 것이고, 그렇지만 티 나지 않게 순진한 척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떤 큰일이 생겼을 때 곧바로 '괜찮아의 회로'로 가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아요.
그게 내 일이거나 내 가족의 일이라면 더더욱 잘되지 않죠.
다 싫고 다 힘들고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하는 내 마음도 다 가짜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부정하는 시기를 지나면 사실은 괜찮은 마음이 갖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저는 그렇게 아주 천천히 정말 괜찮아집니다. 서서히 힘이 생깁니다.
그렇게 저는 잘 지내려고 합니다. 잘 지내야 해요.
엄마가 금식인 아침에 엄마와 함께 밥을 거르지 않고 밥맛이 없어도 밥알을 꼭꼭 씹어 넘기며 힘을 냅니다.
나에게 힘이 생겨야 내 곁의 사람에게 내 힘을 너끈하게 나눠줄 수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꼴로 혹은 며칠 간격으로 부모님이 올라와 저희 집에 머무르셨고, 그때마다 저는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2곳의 병원을 예약했고, 엄마는 병원을 옮겨가며 MRI와 초음파내시경 검사를 했습니다.
대학병원에 가면 참 이상하게도 몸과 마음이 혼란스러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새하얀 조명이 켜져 있는 높고 큰 건물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밝은 조명, 하얀 기둥, 높은 천장, 대기실 의자, 안내 표지판.
앉아 있는 사람들, 서류나 번호표를 들고 서성이는 사람들, 표지판을 보며 각자의 길을 가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그 모습은 마치 예전의 공항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곳에서 느끼는 설레는 긴장과 약간의 어리둥절과는 완전히 다른 표정과 상황입니다.
저 또한 몸이 바짝 얼어버리지만 흐트러지는 정신을 바로잡고 접수를 하고, 필요한 서류는 잘 챙겼는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합니다.
그 와중에 다정한 친절을 베풀어주는 분을 운 좋게 만나기라도 하면 바짝 조였던 긴장의 끈이 조금은 풀리는 것도 같습니다.
특히나 긴장되는 시간은 검사 중, 그리고 의사를 만나기 전 대기하는 시간입니다.
별일 아닐 거야, 괜찮을 거야, 그런 주문을 마음속으로 계속 외워보지만 긴장되고 초조하기는 매번 똑같습니다.
그런 시간을 몇 차례.
긴장했다가 풀어졌다가, 한숨을 쉬었다가 거두었다가.
힘이 빠지다가 또 힘을 냈다가.
그렇게 보내고 났더니 2월이 훌렁 지나가버렸습니다.
지금은 안심할 수 있는 결과를 들은 상태라 가족 모두가 큰 시름을 덜었습니다.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
2월의 달력을 보면 엄마의 병원 진료 예약이 며칠 사이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2월이 어찌나 빨리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블로그에 가면 지난 오늘을 추억하라며 남겨둔 글을 돌아보라는 이미지를 띄어줍니다.
며칠 전에는 작년 편지에도 전해드렸던 히아신스 이야기가 보였어요.
까맣게 잊고 지냈던 히아신스가 떠올라 베란다로 얼른 달려갔어요.
혹시, 설마 하며 화분 뚜껑을 조심스레 열어보니 올해도 어김없이 말간 새싹을 틔었더라고요.
기쁜 소식처럼 유난히 반가웠습니다.
히아신스도 기특하고, 돌아보면 저도 조금 기특합니다.
금세 3월이네요.
엄마는 괜찮고요, 새싹은 올라오고요.
이제 정말 봄이 오려나 봅니다.
소란한 듯 소란스럽지 않게 올해의 봄도 무사히 잘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