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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수요일에는 카페에 갔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정된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의 시간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에 필사할 책도 챙기고, 그림 그리겠다며 노트도 고르고, 필통에는 연필과 펜을 선별해 넣고, 읽을 시집도 신중하게 골라 가방에 골고루 넣었습니다.
욕심만큼 가방이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약간 들썩이지요.
아무도 저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남의 눈을 매우 예민하게 신경 쓰는 저라서, 작업을 위해 혼자 카페를 갈 때면 카운터에서 시야가 모두 들어오는 작은 카페보다는 조금 규모가 있는 카페를, 사람이 돌아다니는 중간 자리보다는 벽 쪽의 테이블을 선호하게 되는데요.
오전의 카페는 한산했고 벽 쪽 테이블도 넉넉하게 있어 가뿐 마음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수요일 카페에서 홀로 있는 시간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타이머가 됩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타의로 종료될 때까지, 2시간이 될까 말까 한 시간.
오전, 카페,라는 시간과 장소에는 어떤 마법이 있는 걸까요.
한 움큼의 시간을 조금 알차게 보내겠다는 다짐에 카페에 있으면서 독서실에 있는 사람처럼 열심히 모드가 되었습니다.
차창 밖으로는 비가 내리고요.
운치 있는 오전이 꽤 낭만적이고, 이 시간에 집중하고 있는 내가 멋스러워 괜히 사진도 찍어보았습니다.
욕심부려 챙겨온 것 중 제대로 한 것은 독서와 필사 두 개뿐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요,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는 기다린 사람 곁으로 카페 밖으로 총총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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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생각 안 하며 하루를 늘어지게 보내고 있던 어떤 날에는 게으른 내가 한심스러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미뤄두고 읽지 않은 책을 부랴부랴 집어 들어 올린 적이 있어요.
저녁 준비하기 전 여유 시간에 1시간 타이머를 맞춰두었습니다.
글자를 한 자 한 자 쓰고 있는 지금도.
시간은, 계속, 계속, 재깍재깍 가고 있지만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고.
그러다가 시간의 숫자가 내 앞에 놓여, 나 간다, 가, 가고 있다,는 동작을 취하며 시간이 초 단위로 지나갈 때면 사람의 마음이 참 아쉬워지고 조급해집니다.
단순하게도 그럴 때, 시간이 가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자각합니다.
타이머 효과란 아주 기특하고 묘한 효과가 있어서 그 시간 동안 저는 스마트폰을 일절 들여다보지 않고 책 읽기에 집중했습니다.
1시간이 다 되고 알람이 울릴 때, 아니 더 보고 싶은걸? 하는 서운함과 애틋함이 생길 정도였어요.
이렇게 톡톡한 효과를 본 이후, 저는 가끔 독서의 시간에도 타이머를 맞춰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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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엄마가 물었어요.
전시 날짜는 나왔어?라고요.
언젠가 엄마에게 제 포부를 이야기한 올해는 이렇게 다가왔고, 거기엔 전시가 있었고, 그 어딘가를 가을로 세워두고 있었는데요.
저야말로 아무 정체성 없는 인간으로 살다가 엄마의 가벼운 질문에, 아니 아직이라고 얼버무리는 자신감 없는 대답을 하며 화제를 돌리고 딴 이야기만 하다가 전화를 끊었습니다.
벌써 4월이 된 거예요.
그러고는 생각했어요. 그러고는 봤어요.
누군가가 기록해둔 1분기의 결과를요.
사실 샘이 나서 잘 읽지도 않았는데, 나 진짜 뭐 하는 사람이지? 3개월 동안 난 뭘 했지...?
질문해 보는데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바쁜 하루에 짬을 내어 잠깐의 시간에 작업을 했던 날이 있었어요.
나라는 사람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또 하루에 얼마나 아무 일도 안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 간극은 크고 크다는 걸 제 일기장을 들춰보며 알았습니다.
제겐 시간이 있었고, 시간은 내면 되는 것이었고, 그런데 저는 하지 않았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쉬어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4월을 맥없이 맞이했을 때, 이렇게 1분기가 지나갔다는 걸 알았을 때 조금 헛헛하고 아쉬웠습니다.
1년을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고, 분기로 나누고, 그 사이에 또 월말 결산이란 것을 하지요.
이런 건 왜 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저는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서 묻게 되는 의아함과 질문인 것 같아요.
열심히 구체적으로 해본 적이 없어서 단위, 결산, 그런 것에 이해도나 공감도가 낮고 어떤 효과나 성과를 간절하게 누리거나 바라본 적이 잘 없고.
실은 뭔가를 당연히 바랬으면서도 게을러서 하지 못한 나는 뒷전으로 하고요.
나란 사람에 대한 계획을 짜보면 세세하지 않고 촘촘하지 않으며 계절 그 어딘가, 먼 훗날을 바라보며 목표들을 그리곤 했어요.
누군가가 애써 써온 시간과 노력에 샘을 낼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람 그림을 그려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한 지 1년도 넘은 것 같은데 그 사이 저는 100명의 사람도 채 그리지 않은 것 같아요.
오랜만에 사람을 다시 그리려니 얼굴의 윤곽조차 제대로 안 그려져서 막 울고 싶어졌어요.
왜 언제든 다시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이렇게 그림 근육이 다 굳은 채로 지냈으면서.
처음의 마음으로 크로키를 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
3분으로 타이머를 맞춰요.
얼굴을 넘어가 몸통을 그리는데 벌써 3분이 지나가버려 다음 사람이 나와요.
손가락 발가락은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그 시간에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엉망인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3분은 너무 짧은 것 같아 4분, 4분도 너무 짧은 것 같아 5분으로 다시 맞췄습니다.
시간은 이렇게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데 그림은 참 내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요, 이제 진짜 매일 조금씩 해보려고 해요.
그러다 또 망가지려 할 때 타이머의 도움을 받을 거예요.
시간은 지금도, 자꾸자꾸 가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