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음악 감상'이라는 대답은, 조금 싱겁고 멋쩍지만 그래도 음악은 제게 취미가 아닌가 싶어요.
취미란 얼마나 좋은 뜻인지 사전의 말을 적어보자면,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이라고 합니다.
취미의 정의가 이렇담 음악은 정말 제 취미이며, 욕심 없이 누리고 즐기는 일이자 힘이자 멋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음악 플랫폼은 벅스뮤직과 유튜브 뮤직입니다.
벅스뮤직은 국내 최초 음원 서비스를 시작한 곳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음원을 자랑하지만 글쎄요, 주변에서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건 도통 듣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문득 생각난 것인데, 여러분은 피식대학 피식쇼를 보시나요? 저는 애정 하는 쇼인데요, 피식쇼에 게스트로 나온 새소년 황소윤에게 음악 플랫폼인 스포티파이를 사용하느냐며 힙스터 테스트를 하는데, 황소윤은 당연히 사용한다는 대답을 하며 근데 이게 왜 힙스터 테스트인지 의아해합니다. 그에 반해 벅스뮤직을 듣는다는 코미디언 이용주는 약간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벅스뮤직은 이렇게 놀림을 받는 것인가 싶어 벅스사용자인 저는 약간 씁쓸하게 웃었고, 그렇지만 여기에 이용주처럼 능청스럽게 '사랑해요, 벅스뮤직'이라고 외칠 자신감과 자부심은 없습니다. 그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도 다른 플랫폼을 거치고 거쳐 국내 최대 규모의 음원 보유라는 걸 듣고 이곳에 왔고, 아직 불편함이 없어 다른 곳으로 갈아탈 생각이 없는데 이곳에 이렇게 머무르며 벅스계의 고인 물이 되는 건 아닌지...(여러분은 주로 어떤 스트리밍 앱을 이용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음원이나 저작권에 대해 거의 모두가 무지했던 시절, 용량이 정해져 있는 공CD나 MP3에 듣고 싶은 곡을 한 곡 한 곡 저장하고 들어보며 정성을 담았던 기억은 옛 추억이 되었고, 이제는 저장 없이 바로 스트리밍 할 수 있으니 음악 앞에서 신중해지기보다 가벼운 마음이 듭니다.
23년 4월 현재, 벅스뮤직의 제 플레이리스트는 비빔밥처럼 장르가 마구 뒤섞인 채로 985곡이 담겨있다는 걸 알았는데... 새삼 놀랐습니다.
가벼운 선택과 거대한 용량이 준 굉장한 숫자입니다.
유튜브뮤직은 랜덤 재생으로 듣습니다.
제가 만약, 스티비 원더의 'Superstition'을 듣고 싶어 이 한 곡을 클릭해 재생하면, 다음 곡들은 내가 선곡한 음악과 비슷한 느낌의 곡들을 자동으로 재생해 줍니다. 이 시스템은 어느 때엔 아주 편안하고, 어쩜 이렇게도 좋은 곡을 찰떡같이 추천해 줄까 싶다가도, 내가 이 노래는 너무 자주 들어 지루해졌어, 좀 별로야 싶은 곡에 엄지 거꾸로 해놓은 표시를 몇 번이고 해놔도 인공지능은 그걸 반영하지 않은 채 여전히 또 재생하거나, 제게 전혀 감흥 없는 곡들을 추천해서 실망시키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은 아직 제 취향을 완벽히 그리고 섬세하게 잘 모른다는 것이 랜덤 스트리밍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데, 취향의 범위에 들어갈만한 곡을 주로 추천해 주다가도 이건 어때요, 이 곡도 한 번 들어보세요, 하며 평소라면 잘 듣지 않을 곡을 추천해 줄 때, 새로이 알게 되는 좋은 음악을 만나는 때도 종종 있습니다. 제 취향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듯, 인공지능이라 해도 100퍼센트 완벽히 좋은 것이란 없고 그 허점에서 발견되는 좋은 음악은 당연히도 존재합니다.
이렇게 선택적 스트리밍과 자동적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번갈아 들으면 되지만 그래도 저는, 누군가가 정성스레 고른 플레이리스트가 궁금합니다.
그렇다 보니 2021년 6월 강릉에서, 서점 '한낮의 바다'에 갔을 때 Music For Inner Peace라는 책을 발견했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요.
이 책은 플레이리스트를 가이드 해주는 책입니다.
저 혼자 100곡, 1000곡의 음악을 들어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을 책 펼침 몇 번에 발견하게 되다니, 선곡의 이유와 배경이 담긴 선한 공유의 책은 제게 너무나 고마운 책이 됩니다. (최근에 나온 책은 아침을 위한 음악, 'Music For Late Morning')
이것은 What's In My bag을 보며 취향에 예민한 사람이 알려주는 실속 추천 아이템을 보며 은근히 나도 따라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려나요.
이 책을 쓴 박정용 저자는 공간 벨로주를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벨로주는 서교동에서 카페로 시작해 2009년부터 수많은 공연과 음악을 만들어온 곳인데요, 2018년부터 마포구 서교동과 망원동 두 곳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벨로주 망원에서 지난 토요일에 음반 장터가 열렸는데,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대기줄이 있었지만 선뜻 기다렸습니다. 한 명씩 느리게 빠지는 줄 안에서, 좋아하는 마음은 대기를 하면서도 설레는구나 싶었어요.
물론 긴 대기라면 힘들었겠지만, 2-30분쯤의 대기쯤이야 거뜬했고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드디어 안에 들어가 보니 음반들이 빼곡했고, 여러 사람들은 음반 구경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아마도 음악을 열렬히도 좋아하는 사람들 틈에서, 저는 완전히 새내기인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굳이 티 내지 않고, 궁금했던 가수의 CD 하나를 골라 계산하고는 바로 나오기가 아쉬워 천천히 공간을 더 구경했습니다.
음반장에 빼곡히 꽂힌 CD등에 스마트폰 불빛을 비추며 도서관 사서처럼 꼼꼼히 음반을 확인하는 이도 여럿 있었고, 영화나 어디 드라마의 클리셰가 연상되는, 누군가와 부딪히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이 CD탑을 쌓아 구매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바닥에 놓인 음반 곁에 털썩 쭈그리고 앉아 나만의 보석을 찾는 듯 신중한 사람들, 상기된 표정과 반가운 눈동자, 오고 가는 음악의 대화와 질문들 속에서 저는 이상하게도 약간 들뜨더군요.
꽤 조용하지만 열정적인 이곳에서 제가 느낀 것은 아마도 에너지였겠지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막대한 에너지. 그래서 저도 취미의 힘으로, 함께 즐거웠는지도 몰라요.
음악을 듣는 일, 음악의 힘과 멋.
저는 이렇게 음악과 주고받는 에너지를 오래오래 느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