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얼마나 갑자기였는지, 이렇게 훌쩍 떠난 여행은 처음이어서 이런 여행도 있나 이런 여행이 가능한가, 그런 말을 반복했습니다.
제게 해외여행이란 보람되거나 힘든 일을 마치고 나서 어떤 보상으로 떠나는 것, 꼭 가야 하는 일이나 의무, 엄청난 호기심과 열망,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홀로 이상하게 여행에 갑갑한 테두리를 세우고 있었던 듯해요.
그러니 이번 여행은, 이래도 괜찮나 하는 의심이 자꾸 들었어요. 지금껏 아무도 제게, '여행은 왜 가니?'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에요.
저는 멀리 떠난다는 것에 긴장, 걱정, 불안이 3세트로 찾아옵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에는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해요. 교토를 가기 전날 밤에도 짧은 낮잠 같은 잠을 자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공항으로 갔습니다.
비행기 날개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비행기가 공중으로 붕 뜨는 감각을 오랜만에 느끼며, 점점점 작아지는 도시를 구경하며, 구름 위를 구름 위를 서서히 날아올랐습니다.
땅에 있던 나의 시야에선 하늘이 흐렸는데 아주 높이 올라오니 새파란 하늘과 구름이 천국처럼 펼쳐졌습니다.
아, 이런 풍경을 보려고 비행기를 탈 수도 있겠구나 싶을 만큼 아름다워 오래오래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비행기는 안정된 고도로 올라와 순항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말도 안 되게 갑자기 또 그 증상이 찾아왔습니다.
모든 걸 다 토해낼 것 같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온몸에 피가 통하지 않는 느낌.
정말 정말 무섭습니다. 그 공포와 불안. 이런 경험은 신혼여행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난생처음으로 느꼈는데 그때는 상태가 심각해서 기내에 의사를 찾는 방송을 하고, 나만 원한다면 지금 비행기를 돌리겠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가는 신혼여행인데, 빠리 빠리, 안 돼 안 돼,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응급조치로 비상구 좌석에서 산소호흡기를 낀 채 신혼여행지에 도착했었지요.
그때는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면 지금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 알고 있습니다.
일단 심호흡을 해야 합니다. 여행 떠나기 며칠 전에 봤던 영상이 '박하경여행기'인데, 거기서 가장 쉬운 명상법은 숫자를 세는 것이라고 했던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괜찮다 괜찮다 최면을 걸고, 눈을 감고 숫자를 세었습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뱉다가 알았습니다. 숨을 위해 숨을 쉬는 일도 어렵다는 것을요.
그렇게 계속 숨 쉬고 숨 쉬다 거짓말처럼 괜찮아졌습니다.
비행기가 땅에 착, 하고 착륙했을 때 저는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 누가 볼까 싶어 얼른 닦아냈습니다.
교토는, 참 가까웠습니다.
오전에 출발했는데 오전에 도착을 했습니다.
교토는 이번이 4번째.
여행을 오기 전 오랜만에 구글 지도에 들어가 보니, 이전에 교토 여행을 계획하면서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표시해둔 곳이 생각보다 참 많더라고요. 그때는 가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참 많았는데요.
이렇게 저의 의지가 없었던 여행은 처음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공항에서 교토역으로 오는 길, 교토역에서 숙소에 가는 길도 모른 채 남편 뒤를,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가자, 오자 한 여행이 아니었으니 이래도 될까, 싶으면서도 저는 그저 헐렁하고 차근차근한 마음이었습니다. 불만 없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여행 첫날 밤 일기를 쓰다 알게 된 것은 제게 어떤 조급함도 없다는 것.
이것도 봐야 하고 저것도 봐야 하고, 그런 마음이 없는 욕심 없는 여행.
여행이란 무엇인가, 내게 여행이란 무엇인가.
자꾸 찾아오는 불편한 마음이란 이런 것이었어요.
무슨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도 없이 어떻게 여행을 와? 내가 감히 이렇게 무목적으로 해외를 나와도 되는 것인가, 하는 스스로에게 주는 핀잔과 부채감.
좋은 걸 보면서도 이런 걸 즐겨도 되는 건가 싶은 어리석음이 자꾸자꾸 드는 저이지만,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나인 걸 어떡하나.
그저 받아들이고, 좋은 게 왔을 때 좋은 걸 받아들여야지.
이런 며칠을 보내는 것도 괜찮은 것이라 생각해버리기로 했습니다.
순수하게 즐긴다는 건 귀한 일임을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교토라는 곳은 대체 어떤 곳일까,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제가 교토를 무슨 경주 가듯 다녀온 저를 봅니다.
감흥이 덜했다기보다 익숙해진 눈과 마음을 보았으며, 초심을 잃고 잊은 게 아니라 달라진 것뿐이고 그저 지금의 마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흘렀고, 여행지가 변한 것만큼 나도 변했다는 것.
여행을 다녀온 지금은, 저에게도 이런 여행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큰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이어서, 내가 보고 듣고 먹는 것 모두가 덤같이 느껴진다는 것.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더 커다래진다는 것.
'무조건'이 없어도 집에 와 흩어진 여행의 시간을 훑어보면서 흐뭇하게 웃는 것.
이거다 싶은 대박 사진을 못 건져도, 같은 것을 다른 각도로 몇 번이고 찍는 열정이 조금 사그러졌어도, 지금은 이런 나. 이런 데도 이런 대로 괜찮다는 것.
그래도 열정적으로 한 일은 있어요.
2018년부터 남긴 '교토 노트'를 보며, 과거의 나를 기특해하며 이번에도 그 노트를 가져가 빈 노트를 차곡차곡 채웠습니다.
주체적인 기록은 매일 밤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미래의 내가 훗, 하며 지금의 나를 조금은 귀여워해 주고 이 땐 이랬구나 느껴주길.
그때 또 달라진 나는 과연 어디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