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엔 슬프고 아파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일기를 쓰다 엉엉 울고요,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 옆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를 돌돌돌 서둘러 풀고는 눈물을 닦고 코를 풀고.
고요한 밤에 야금야금 읽던 고명재 시인님의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산문집을 한 번에 몰아쳐 다 읽었습니다.
명랑한 기운으로 힘차게 나아가려고 할 때는 눈물을 머금고 있는 듯한 책엔 손이 잘 가지 않아요. 슬픔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애써 모른 척해요.
그러다 내가 무거워지고 우울해지고 슬퍼질 때 스르르 손을 뻗게 되는 것은 이런 무채색의 책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적극적이면서도 이기적인 방법이에요.
이 책은 혼자 봐야겠구나 싶었어요. 눈시울이 자주 붉어지고, 혼자 있대도 눈물을 슥 닦게 되는 페이지가 참 많았습니다.
글로 한번 걸러졌을 정화된 마음이라도 그것이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아마도 제 안에 슬픔의 농도가 그득하게 차 있어 이 책이 마중물 역할을 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따뜻했어요. 사랑이 넘쳐서요. 사랑하는 사람과 먹는 뜨끈한 설렁탕 같은 글이었어요.
슬픔과 사랑과 행복이 막 버무려지고, 세세한 장면이 그려지는.
시인들이 쓴 산문이 그렇듯 이 책 또한 참 아름다워요. 오래 생각하고 들여다본 뒤에 나왔을 다감한 비유에 눈과 마음으로 감탄하고, 품에 안고 다니고 싶은 글귀들에 반해 휘리릭 멈추지 않고, 촉촉한 슬픔의 상태로 읽은 듯합니다.
하루는 위염이 너무 세게 와서 약을 먹어도 통증이 낫지 않더라고요.
입맛도 없어 뭘 챙겨 먹기도 싫고, 의자에 힘 없이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눕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하루 꼬박 아프고 다음날 조금 회복이 되었을 때 틈틈이 팟캐스트를 들었습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여둘톡 57번째 에피소드 '휴식의 기술'.
통증으로 홀랑 날린 듯한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휴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휴식이라는 두 글자가 참 반가웠습니다.
1시간여 동안 나눈 대화 끝에 요약을 해 주신 건 이렇게 다섯 가지였는데요.
<휴식의 기술>
1. 바쁜 게 능사가 아니다. 느려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2. 존재의 쓸모를 꼭 증명할 필요는 없다.
3. 휴식은 단절이다.
4. 무용하고 즐거운 활동을 찾아보자.
5. 자주, 달게 쉬자.
- 여둘톡 팟캐스트, Ep. 57 '휴식의 기술' 중에서
아프면서도 뭔가를 하지 못해 끙끙거렸던 나에게, 쉬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가님들의 말에 저는 기대어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고 그 말을 이런 나에게 새겨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저는 그즈음 이불 수선을 했습니다.
저희 집엔, 엄마가 손님용으로 사다 주신 아홉 살 된 꽃무늬 민트색 이불이 있어요.
(저희가 쓰는 용도는 '요'이지만 '이불'이라고 할게요.)
처음엔 무늬가 들어갔다고 꺼리면서 내 것으로는 잘 쓰지 않다가 시간이 흐르며 보드라워진 이 이불을 저는 자연스레 찾게 되고 이것만큼 얇고 좋은 게 없고. 이제는 꽃무늬도 예쁘게만 보입니다.
어느 날 남편이 여기 봐봐, 발가락이 슝슝 들어가. 하며 구멍 난 이불을 보며 웃더라고요.
엄지와 검지를 쭉 뻗은 길이만큼 가로 세로가 찢어져 하얀 솜이 보였습니다.
얼마나 많이 썼으면 이렇게 헤졌을까 싶어 꼬매야지- 하면서 저도 같이 흐흐흐 웃었지요.
꼬매는 건 얼마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인지, 그대로 며칠을 모른 척 두었고 잠결에 그 구멍으로 발이 들어가는 느낌이 몇 번 들었어요.
그러다가 구멍이 더 커질까 싶어 반짇고리함을 꺼내 흰색실을 바늘에 꿰어 한 땀 한 땀 꼬매기로 했습니다.
꼬매는 일은 고개를 숙이는 일, 마음이고 정성이에요.
얼마나 촘촘한지 다 꼬매고 났더니 꽤 뿌듯해서 다 해놓고는 사진도 남겼답니다.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산문집 안에는 〈수건〉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이 수건은 하도 오래 썼더니 물방울이 제대로 닦이지 않네. 한여름 아빠가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털면서 중얼거렸다. 참 신기하지 않니, 살에 섬유가 닳는다는 게. 오래 쓰면 수건도 지친다는 게.
-고명재 산문,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난다, 148p.
닳고 헤진 이불을 꼬매면서 이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살에 섬유가 닳았구나. 오래 써서 이불도 지쳤구나 싶었어요.
이불도 나도 지쳐버린 그런 여름.
그렇지만 저는 지친 이불을 놔주지 않고 붙잡았지요.
이 이불엔 '엄마가 사준' 타이틀이 붙었고, 그래서 휙 버리기엔 아깝고 소중한 이불이에요.
구멍은 정성스레 잘 메꾸었고, 그 위에는 저의 애정이 덧대어졌어요.
지치고 아플 때, 내 손으로 수선한 이불 위에서, 내 쓸모를 증명할 필요 없는 꽃밭 위에서, 저는 그저 이불의 쓸모를 고마워하며 이 여름을 잘 보내야겠다, 잘 쉬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