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엄마 아빠 오빠가 놀러 왔어요.
그 덕분에 저는 오이 가지 호박 토마토 복숭아 등등의 여름 과실들을 부자처럼 먹었고요.
엄마가 집에 올라오셨으니 봉숭아물을 들여달라 했어요.
몇 년 전부터 봉숭아꽃 빻아둔 것을 냉동실에 얼려 두었거든요.
해동을 하려고 바깥에 두니 봉숭아꽃은 금세 녹았고, 촉촉해진 꽃을 식탁에 두고는 엄마와 가까이 붙어 앉았습니다.
저는 다섯 손가락을 꽃처럼 활짝 피고 엄마는 그야말로 제 손톱만큼 봉숭아꽃을 덜어 제 손톱 위에 봉숭아꽃을 올려 주었어요.
손톱 하나하나에 꽃을 올리고 랩으로 돌돌 말고 마지막으로 하얀 실로 묶습니다. 자다가 불편하면 안 되니까 조심조심 살살. 엄마는 제 손가락을 살펴주며 묶어주었어요.
꽃물 들이는 여름밤 저는 어린 소녀가 된 것 같아요. 마당 있던 할머니네 지천으로 피어 있던 어린 날의 여름도 생각나고요. 그 옛날엔 할머니가 백반을 꼭 넣어주셨는데, 오로지 꽃만 올린, 게다가 몇 년 된 봉숭아물이 손톱에 잘 스며들지.
꼼꼼히 제 손톱을 매듭지은, 우리 집 1일 미용 원장 선생님, 엄마는 물이 잘 들지 않을 거라 장담했어요. 그래도 저는 약간의 기대를 품은 채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역시나.
원장 선생님 말이 맞았어요.
손톱 위엔 웃음이 나는 무늬와 희끄무레한 옅은 주황색 물이 들었더라고요.
모두가 자는 이른 아침이라, 저는 침대에 다시 누워 손가락을 펼치고는 이리저리 구경했습니다. 기대를 품고 잔 밤을 비웃듯, 피식 웃음이 나는 손톱이었지만 이런대로 저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이렇게 알 수 없고 어렵고 불편한 멋, 다정히 둘이 붙어 앉아 시간을 보내는 세심하고 아름다운 밤의 놀이, 손톱에 꽃물을 들이는 이 자연스러운 염색은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일어난 가족들은 저를 보자마자 제 손톱을 궁금해했지요. 보고는 모두 훗 웃었어요.
예전 완두콩에도 봉숭아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이번이 아마도 세 번째인 것 같아요.
저는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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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는 요즘 시를 써요.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은 시를 쓴다는 말이 이리도 참 수줍네요.
가족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그다음 날 아침의 경험으로 쓴 시입니다.
이 시도 스리슬쩍 보고 가세요.
나는 아침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다
가벼운 아침
나는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 될 수 있을 것 같고
날 수 있을 것 같다
가글만 하고
쭐레쭐레
에코백 흔들며
식빵 사러 갔다
빵 굽는 사장님이
빵 만들다 말고
계산해 주셨다
처음으로 눈 마주치며
몇 마디 인사도 주고받았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빵을
가방에 담으니
기분 좋아지는
빵의 무게와 훈기
콧노래가 나올 지경
집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니
아,
눈꼽을
속눈썹처럼 붙이고
있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