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해외출장으로 며칠 혼자 지냈어요.
돌이켜보면 저는 혼자 살아본 적이 없어요.
대학생 때는 기숙사와 하숙 생활을 하면서 늘 룸메이트와 방을 썼고, 졸업 후에는 서울에 자리 잡고 있는 친구 자취 집으로 올라와 여럿이 함께 복작복작 살았고요.
그다음엔 결혼을 했으니 온전한 독립의 시절은 제게 없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지낼 때도 간혹 혼자 있을 때가 있었지만 좋아하는 밤 시간이, 혼자 자려고만 하면 이상하게 무서워져 불을 켜고 자거나 눈에 불을 켜고 버티다 늦은 새벽에나 지쳐 잠들었어요. 환한 조명 탓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그럴 때면 저는 선잠을 잤습니다.
아니 그런데 혼자 지내는 요 며칠 동안 저는 아주 잘 잤습니다.
깜깜한 밤 피곤해지면 방으로 들어가 침대 협탁 노란 조명을 켜놓고 책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하는 수면모드로 전환!
그러다 졸린 눈으로 조명을 딱 끄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혼자 밤을 지낼 때 눈을 감으면 엄습했던 두려움이나 공포 없이 스르르 잠에 드는 게 신기했습니다.
예전엔 혼자 잠들 때는 귀가 커진 기분이었어요. 귀가 커져서 별것 아닌 소리도 잘 들리고 흠칫 놀라고 신경은 곤두서 있고 별의별 무서운 망상을 하고요.
그런 제가, 방의 조명을 끄다니! 어둡게 만들다니!
'아니 나 진짜 어른이 되어버렸잖아!?'
누군가 이런 저를 보며 이 사람 뭐지.. 하며 어리둥절할 포인트가 제겐 놀라운 느낌표였어요.
한참 전부터 이미 어른이었는데 어른의 감각을 새삼스레 다시 느끼는 기분.
고작 이런 것으로요. 참 사소하고 유치하지요.
여러분에게도 그럴 때가 있나요,
저는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 때가
비누 칠을 얼굴에 왁왁 묻힌 후 눈을 뜰 때, 알약을 꿀꺽 삼킬 때,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 관공서에서 혼자 일을 처리하고 나올 때- 입니다. 이 역시 소소하지요. 그 외 기타 등등이 있겠으나 어쨌든 이제 여기에 '혼자 잠을 잘 잘 때'가 추가되었어요.
스스로 나는 사람이다,라는 걸 잘 인식하며 살지 않듯 나는 어른이구나라는 감각을 내내 느끼며 지내지는 않는데 저는 요 며칠 어른 재확인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서 '나 어른이네' 하는 것들은 사실 으쓱할 만한 만족감이나 자랑할 만한 뿌듯함을 선사해 준다기보다 그저 해냈다는 종류의 기분이겠지만 그렇지만.
그까짓 것이라 해도 해낼 수 있다니 다행은 다행인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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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지에서는 손이 아프다 해놓고 이번엔 왼쪽 발바닥에 족저근막염이 왔습니다.
그저 뜬금없이 어느 날 갑자기 아팠어요.
통증이 생기기 전 날 5천보도 채 걷지 않았고 이 정도의 걸음으로 발바닥이 아픈 적이 없었는데 말이에요.
격한 운동을 했거나 오래 서 있거나 평소에 신지 않는 신발을 신었다면 이것 때문이었을까 의심해 보기라도 할 텐데.
통증이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왔어요.
내쫓고 싶습니다. 뻥 차버리고 싶네요.
그래도 쿠션이 있는 운동화를 신으면 좀 덜하긴 했는데 이제 신발을 신어도 아프고.
통증이 심한 밤에 뭣 모르고 얼음찜질을 해주면서 마사지를 해주었는데 그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발을 디디는 순간, 으앗! 놀랄 정도로 아파서 결국 병원에 다녀왔어요. 바닥을 디디면 너무 아파서 왼쪽 발을 까치발 들고 다녔습니다.
양발이 모두 그런 것이 아니라 한쪽만 아픈 것에 그나마 고마워해야 할 지경입니다.
저희 시아버님도 족저근막염이 있어 신발에도 신경을 쓰고, 실내에서도 푹신한 실내화를 신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뵈었는데, 저는 그런 경험이 없으니 그저 아버님이 아파서 속상하고, 나아지면 좋겠다 통증이 사라지면 좋겠다 그 정도로 마음을 쓰고 바랄 뿐이었는데요.
아파보니 알겠습니다. 아파보니 너무나 잘 알겠어요. 타자의 고통을 짐작하는 것과 내가 그것과 비슷한 증상으로 아픈 것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요.
통증 정도의 차이는 당연히 있을 테지만, 통증은 혼자만 아는 고통이니.
아프셨겠다. 진짜 아프셨겠다. 너무 불편하셨겠다.
진짜, 너무, 이런 부사들이 자동적으로 툭툭 튀어나와요.
왼쪽 발바닥 아래가 조금 부어있는 것 외엔 큰 이상은 없으니 약을 잘 챙겨 먹고 덜 걷고 쉬면서 차차 회복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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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잠을 잘 잔 것도, 왼쪽 뒤꿈치가 아픈 것도 당연하게도 마음먹고 된 일은 아닌데요.
잠을 잘 자야지, 해도 안 오는 게 잠이고 건강해야지 하지만 어딘가 꼭 아프게 되고.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이런 거겠죠.
어느 날 자연스레, 어느 날 갑자기 그냥 그렇게 돼버리는 일들.
어떤 일은 반갑고 어떤 일은 아프고.
마냥 좋기만 한 일도 마냥 괴롭기만 한 일도 없다고 믿고, 아니 믿으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는 거겠죠?
막연한 긍정은 가끔 꺼려지지만 그래도 어떤 일은, 어떤 태도는 어떤 마음은 좋은 쪽으로 밝은 쪽으로 향해야 잘 나아갈 수 있다고 믿어요.
마이너스의 기운으로 가라앉으며 그렇게 할 수 없는 때도 있기 때문에 좋은 쪽의 에너지를 쓸 수 있을 때는 그런 쪽으로 힘을 내봅니다.
오늘도 잠을 잘 자겠지, 내일은 좀 더 낫겠지 하는 바람을 품어요.
혼자, 혼자여도 스스로를 잘 도닥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