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앱을 보니 오늘의 걸음수는 11걸음.
두 작대기 같은 걸음수를 보면서 헛웃음이 났습니다.
하루에 사람이 이렇게 적게 움직일 수도 있구나 하면서요.
하긴 오늘은 집에만 있었으니까요.
집 안에서 움직일 때 스마트폰을 내내 들고 다니지는 않으니까, 설마 열한 걸음보다는 더 걸었겠지 싶은데 체감상 그 정도 걸음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은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요.
기분도 그저 그러했어요.
10리터 쓰레기봉투에 쓰레기가 넘칠 듯 말 듯 하여 손으로 발로 꾹꾹 누르다가 괜히 짜증이 솟고, 아... 쓰레기는 잘만 쌓이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또 잘 쌓이는 게 있잖아요.
먼지... 먼지 또한 한 부지런하지요.
방바닥을 닦다가는 매번 깜짝 놀라요. 아니 집에서 펄쩍펄쩍 뛰지도 않는데 먼지는 어쩜 이렇게 성실히 쌓이는지.
나는 요즘 대체 뭘 쌓고 있나 그런 생각이 불쑥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요. 생각이 얼마나 바닥이면, 마음이 얼마나 허무하면 쓰레기와 먼지에서 이런 생각까지 드는 것일까요.
마음이란 왔다 갔다 하는 것이고 내 마음 내가 어찌해보면 바뀌는 때도 있는데 그게 잘되지 않는 날도 있잖아요.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에요.
맛있는 초콜릿을 입에 물고 오물오물 해보는데, 달콤한 기분은 그뿐. 금세 녹아 사라져 버렸어요.
오늘은 수요일이에요.
저는 편지를 일정한 시간에 보내고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마감이 있는 셈인데요, 완두콩 레터는 거의 목요일에 씁니다.
목요일에 쓰는 이유는, (마감력이라는 신비한 마법(!)의 의지로 써지기도 하지만) 시간을 최대한 늘려보는 것이에요.
고작 일주일이지만 하루라도 시간을 더 보내면 어떤 경험이나 생각도 더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런데 시간과 글감은 정비례로 함께 늘어나지 않더라고요.
쓰지 않는 공백의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해도 반짝이는 커서 앞에서는 머뭇댑니다.
마감을 앞두고는 저의 일주일을 돌려봐요.
특별한 일이 있었나? 재미난 걸 봤나?
사실 대부분의 날들은 조용하게 흘러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아요.
하루 대부분을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했고, 막 다 귀찮은 하루를 보냈고, 그런 나를 한심스러워하며 투덜거렸고.
그런 이야기만 늘어놓을 수는 없으니까.
지난달 박연준 시인님의 특강에 갔을 때 이런 말을 들은 듯해요.
마감을 해야 하는데 글이 너무 안 써질 때, 짧게 한 줄만 써야지- 하고 마음먹고 글을 썼더니 줄줄줄 써지더라는 이야기.
저 또한 조용한 일주일을 보내서 무슨 이야기를 쓸까 고민했는데.
쓰레기봉투에 잘만 쌓이는 너저분한 쓰레기를 꾹꾹 누르며 요즘의 나에게 푹푹 한숨 쉬다가... 여기까지 온 거예요.
글이 글을 불러올 때 참 신기합니다.
글을 쓰면서 또 생각했죠.
쓰레기와 먼지는 쌓이지만 곧 버려지지.
많은 사람들은 인상을 쓰지.
그렇지만 내 글은,
(물론 당연히도 메일 휴지통으로 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그에 앞서)
누군가는 반겨준다!는 차이를 봅니다.
편지를 쓰니 기분이 조금 좋아졌어요.
오늘은 온몸을 구석구석 잘 씻고, 가벼워진 기분으로 잘 자보겠습니다.
열한 걸음과 함께 이루어낸 오늘치의 글.
이 글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