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쓰는 편지 앞에서는 참 망설여져요.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까, 고민도 되고.
이것은 친한 친구를 아주아주 오랜만에 만났을 때 살짝 주춤 되는 마음과 비슷한 것 같아요.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그 마음은 자연스레 풀어지지만.
편지 앞에서의 마음도 그렇게 스르르 풀릴 것이라 믿으며 천천히 글을 써봅니다.
휴재 기간 동안 저는 사랑니도 빼고요, 염색 한 번, 커트 한 번 그렇게 미용실을 두 번 갔고.
여권 재발급 사진을 스마트폰 사진으로 어찌해보려다가 반려당하여, 스튜디오 가서 어색한 모습으로 여권 사진도 찍고요.
제주에서 올라온 맛있는 귤도 꼼지락 까먹고...
책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은 다 읽지도 못하고 반납하기 일쑤였습니다.
머리 긁적이며 전시 스케줄도 짜보고.
오랜만에 포스터 디자인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전시에 마음을 쏟으며 보냈습니다.
휴재 이유였던, 12월의 전시는 잘 마치고 왔습니다.
전시 준비하며 역대급 입술포진이 귤 곰팡이처럼 생겼었고, 반갑지 않은 감기가 포진과 함께 찾아와 골골대기도 했어요.
체력이 무너지니까 마음도 같이 무너져서, 전시가 끝난 뒤로 시간을 점프하고 싶다.. 하는 기분으로 식탁에서 침대에서 엉엉 운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막상 전시 설치를 하고 온 날은 기분이 참 이상했어요.
이게 되는구나.. 내가 친구들과 전시를 하는구나 싶은 실감이 그제야 뒤늦게 찾아오더라고요.
작년 이맘때만 해도 너무 힘들었고, 내년에 내가 어떤 것을 하게 될지 감도 잡히지 않았는데 올해의 12월은 이렇게나 다르구나 싶어 신기하기도 했어요.
한 해의 끝을 전시로 매듭지을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고 뿌듯한 12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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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결산을 하지요.
무엇을 결산하지, 싶은데 '완두콩 레터'로 가볍게 해보려고요.
재미와 의미가 넘쳐흐르는 콘텐츠 세상 속에서, 크게 소문을 내도 모자랄 판에 저는 완두콩레터 홍보도 잘 하지 않고(잘 못하고...) 조용히 혼자 하고 있는데요.
완두콩 레터는 21년 여름 오픈 당시 친구 3명의 구독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122명의 구독자분들이 계세요.
아주아주 조금씩 천천히 늘어갔어요. 어느 달은 그대로였다가 한 달에 한 분 두 분이 구독을 해주기도 하고, 그런 속도로요.
어느 때는 어떻게 하면 구독자 수를 늘릴 수 있을까 하는 조급함과 구독 취소에 속상한 때도 있었는데, 완두콩레터를 쓴 지 2년이 지나고 보니 그런 마음은 많이 누그러지고 여유가 생긴 것도 같습니다.
저는 이제, 묵묵히 꾸준히 즐겁게 해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누가 보면 코웃음 칠 숫자겠지만 당연하게도 숫자 1이 사람 한 명이잖아요.
122분이 한마을에 살고 있다고 상상하면... 엄청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완두콩 마을에 사는 귀여운 사람들을 제멋대로 상상해 보니 착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하하.
완두콩 레터는 올해의 첫 편지 67번째부터 오늘 93번째까지(쉬어가는 편지 포함) 총 27편의 편지를 보냈고요.
그중 편지를 가장 많이 읽어주셨던 편은 1월에 보내드린 '68번째, 새해의 폴짝'이었고,
오픈율이 가장 적었던 편지는 '91번째, 무지개를 보았습니다'였습니다.
사실 큰 의미는 없지만요, ㅎㅎ
연말을 핑계로 해보는 완두콩 결산을 작은 재미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올해는 여러 일들로 휴재가 잦았음에도 꾸준히 편지를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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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리 인사를 드립니다.
올 한 해도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기쁨 가득한 연휴 보내시고, 연말 마무리도 잘하시길 바라요.
다가오는 2024년은 '푸른 용의 해'라고 해요.
좋은 기운도 담뿍 보내드립니다.
올해의 완두콩레터는 오늘이 마지막 편지가 되겠고요,
새해에 산뜻한 모습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추운 날,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게 지내세요.
완두콩 레터와 함께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 고마운 마음 가득 담아, 혜련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