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눈이 자주 내리는 것 같아요.
지난주 화요일에도 눈이 내렸고, 이번 주 수요일에도 눈이 왔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은 조금 덜 심심합니다.
지난주에는 가만히 눈 내리는 것을 지켜보다 시를 써보기도 하고요.
이번 주 수요일에는 그보다 한참 더 눈이 내렸어요.
눈다운 눈이 아름답게 내려 시를 또 써보고. 눈 연작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고.
말을 고르다가 더 쓸 말이 없어졌는데.
그러고도 눈이 계속 내려 베란다 난간에 서서 방충망문을 열어젖히고 눈 내리는 풍경을 스마트폰에 담다가... 밖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을 찾아 하얀 입김을 뿜으면서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듣고 싶고.
모자와 목도리, 패딩 점퍼와 패딩 부츠로 무장을 하고선 나 또한 둥근 사람이 되어 눈사람을 자처해 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에 잘 마르지도 않는 겨울옷들이 흠뻑 젖을까 싶어 우산을 챙기는 소심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런 마음이 반갑습니다.
사실 요즘의 저는 어떤 약속이나 일이 없으면 집 밖을 잘나가지 않아요.
겨울은 낮에도 춥고 해는 짧아 금세 저녁이 찾아오고.
밖에 나갈 마음을 오후에 먹고는 몇 시간 뒤면 깜깜해져버릴 텐데, 하며 그 마음을 다음으로 쉽게 미룹니다.
겨울에 밖에 나가는 것은 왜 이리 잘 안될까요?
결심이 필요해요.
이불 밖을 나갈 결심, 잠옷을 벗을 결심, 세수를 할 결심, 환기를 해야 할 결심, 끼니를 챙겨야 하는 결심.
겨울에는 일상의 작은 일들이 결심으로 바뀌어요.
그러니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신는 것에도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죠.
거기까지 가면, 그렇게 마음을 먹고 문밖을 나서면 또 다른 활기와 즐거움이 있을 것을 알지만...
오소소 돋는 한기와 지내야 하는 겨울은 힘이 참 세서 큰 결심이 아니라면 움직임이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런 기운, 따뜻한 곳에서 귤이나 까먹으며 뒹굴뒹굴 보내는 방학 같은 시간과, 스스로에게 갖는 넉넉한 마음은 연말에 다 떨궜어야 했나 싶고요.
고작 하고 있는 결심이란 이불 밖을 나갈 결심이라니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만... 어쩌겠어요.
이런 저를 이런 때일수록 토닥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조함과 조급함에 망가지지 않기 위해, 나와 달리 멋지게 살고 있는 듯한 저들의 속도와 내 속도는 다르다는 것을, 1월이 모두에게 다 같지 않음을 인식하려 합니다. 흩어졌던 나를 찾고 내 속도와 방향을 찾자고, 온전히 내게 집중해야 한다고 마음먹습니다.
앞서 말했던 눈 내리는 수요일, 도서관에 다녀왔는데요.
책을 보고 나오니 눈은 비로 바뀌었더라고요.
우산 챙기기를 잘했다 생각했어요.
길은 눈과 비가 섞여 질퍽질퍽해 예쁘지 않고.
시무룩해져서 에어팟을 귀에 꽂고 아솔님의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걸어오는데 노이즈 캔슬링임에도 우산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더군요.
톡톡톡, 토독토독.
우산은 눈과 비를 막아주기도 하지만, 소리를 들려주는 도구였어요.
내가 생각한 풍경은 이게 아니었는데, 분명 아니었는데.
혼자 느꼈던 딱 우산만큼의 세상이, 조용히 다르게 참 좋았어요.
겨울도 유효기간이 있으니 날씨 핑계를 도저히 대지 못하는 날이 오기도 하겠죠.
이렇게 집에 있다가 반가운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날엔 밖으로 나갈 결심을 하기도 하겠습니다.
그러다 어딘가에서 뜻밖에 풍경과 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런 것을 글로 기억으로 시로 그림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덜 망가지는 쪽으로, 언젠가의 나에게 기대를 품으며 그래도 좋은 쪽을 바라보고 있는,
아직은 게으르고 느긋한 1월입니다.